글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모든 글을 다 읽고 나서 커피 한잔을 마시니 왠지 커피가 오늘 따라 씁쓸하네요.
http://www.hwp.co.kr/board/skin/default/view.php?mode=view&tbname=remember&no=35&offset=0
이찬진, 김재민, 이민화, 조현정, 정내권, 유하진 모두들 낯 익은 이름이네요...
1998년 제가 회사 생활을 할 때, 815한정판을 샀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네요.
아래아 한글 사태 6주년을 맞아 그 당시의 상황을 가장 심층적으로 정리한 언론의 자료를 공개합니다. 다음은 [헤럴드경제](http://www.heraldbiz.com)에서 2003년 8월에 다룬 기사이며, 여기서는 1998년까지의 내용만 소개합니다.
- 관련 URL: http://www.heraldbiz.com/SITE/special/200305270001/2003/08/04/200308040070.asp
[기업 興亡史] <13> 벤처편 제6화 구겨진 자존심-한글과컴퓨터
‘한국의 빌게이츠’부도 몰리자 MS에 투항
‘한글과컴퓨터’는 우리나라 벤처기업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난 90년 ‘아래아한글’을 기반으로 설립돼 1세대 벤처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후 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지옥을 맛봤고, 2000년 벤처 열풍에 동반해 달콤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것도 잠깐, 한컴은 정보기술(IT) 거품 붕괴와 함께 주인 없는 회사로 전락하는 불행을 겪어야만 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지켜봤다. 한 때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던 이찬진 신화의 몰락과 2기 한컴을 이끌던 전하진 사장의 방만한 투자와 겉잡을 수 없는 추락도 접했다. 또 한지붕 아래에서 두 가족이 다투는 경영권 분쟁 역시 씁쓸하게 지켜봐야 했다. 우여곡절 속에 13년을 살아온 한글과컴퓨터의 부침(浮沈)을 상-중-하에 걸쳐 짚어본다.
<上>빼앗길 뻔한 한글워드 주권
“한글과컴퓨터의 이찬진 사장이 아래아한글을 포기할 마음을 먹은 것 같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며 급히 (김재민) 사장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1998년 6월 초 마이크로소프트(MS) 코리아를 이끌던 김재민 사장은 이런 내용의 전화를 박준모 MS코리아 인터넷사업부 이사로부터 받는다. 당시 아래아 한글에 가로막혀 ‘MS워드’가 한국에서만 유독 맥을 못추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김 사장은 흔쾌히 만날 것을 약속하고 곧바로 미국 본사에 이 사실을 알린다.
그로부터 며칠 지난 8일 저녁 선릉역 인근 지하 단란주점으로 김 사장을 비롯해 박 이사, 이찬진 사장은 주위의 눈을 피해 모여들었다. 이 자리에서 김 사장은 이 사장으로부터 한컴의 자금난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과 MS가 아래아 한글의 지적재산권을 가져가는 대신 부채를 갚을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말을 듣는다.
“당시 이 사장의 얼굴은 무척이나 창백해 보였습니다. 오죽하면 저희를 찾았겠습니까. 단기부채 100억원을 막지 못해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현재는 더존디지털웨어의 최고경영자(CEO)인 김 사장의 회고다.
첩보전을 연상시킬 정도로 비밀스럽게 만난 이들은 긴장된 마음에 술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었다. MS가 한컴에 투자하겠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MS코리아는 곧바로 김&장 법률사무소를 주축으로 회계법인 등을 급조해 한컴 실사팀을 꾸렸다.
이 사장이 9년 동안 고집스럽게 지켜온 아래아 한글을 경쟁사인 MS에 넘기기로 마음먹은 것은 궁여지책 그 자체였다. 외환위기 후유증이 심각해지기 시작한 98년 4월 들어서는 하루하루 어음 결제가 안될 정도로 자금난이 심각해졌다.
당시 아래아 한글 유통을 맡았던 한컴서비스의 박상현 사장은 이렇게 전한다. “한컴 부도는 시간문제였습니다. 이 때 이 사장은 한컴을 매각하기로 이미 마음먹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 때부터 이찬진 사장은 국회의원직을 사임하고 박상현 사장과 함께 한컴을 팔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못한 한컴은 급기야 5월 13일 2억5000만원의 어음을 갚지 못하고 1차 부도를 낸다. 다행히 이 사장과 친분이 두터운 이민화 메디슨 사장이 한컴 어음을 대신 막아준다. 하지만 그것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역부족이었다. 5월 21일 자회사인 한컴서비스마저 1차 부도에 휩쓸리게 된다. 당시 한컴 직원이던 K씨는 3개월 이상 직원들 월급이 묶일 정도로 자금난에 시달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올 것이 오고만 것은 6월 15일. 한컴 분위기는 극도로 침울했다. 100여명이 넘는 기자들이 벌떼처럼 모여 든 서울 롯데호텔. 한컴과 MS코리아의 공동 기자회견이 진행된다. 자리에 나란히 앉은 이 사장과 김 사장은 미국 MS로부터 1000만~20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는 대신 ‘아래아한글’ 사업을 포기하는 양해각서(MOU)를 맺는다.
‘한국의 빌 게이츠’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꼽히던 이 사장이 1000만 아래아 한글 이용자들의 자존심을 저버리고 MS에 무릎 꿇은 사실을 온세상에 알리는 순간이었다. 바로 이 시간 영등포에 위치한 한컴 사무실은 자괴감에 빠진 직원들로 술렁거렸다. 반면 한컴으로서는 이날 회사의 부도를 막을 수 있는 15억원의 자금을 MS로부터 빌려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한사코 익명을 요구한 당시 한컴의 한 임원은 회사 위기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가 표면적인 원인이었지만, 이 사장의 방만한 경영이 근본적인 원인이었습니다. 매출 증가율이 하향곡선을 그릴 때에도 이 사장의 사업 확대는 계속됐습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사업도 진행시키고는 했습니다. 여기에 외환위기까지 겹친 것입니다.” 한컴의 아래아 한글 포기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컴퓨터 이용자들이 동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집단적인 히스테리에 가까웠다. 불법복제 소프트웨어가 문제였다는 이찬진 사장의 언급에 대해서는 국내 이용자들의 자성 분위기도 감지됐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PC통신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아래아 한글을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래아 한글 포기 선언 이틀 후 벤처기업협회 이민화 회장은 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을 비롯해 협회 리더들을 소집한다. 아래아 한글 구출작전회의였다. 다음날 이민화 회장은 아래아 한글이 MS로 팔릴 경우 한국은 1조원의 손해를 입는 것이라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때마침 방한한 MS의 빌 게이츠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한국 정보기술(IT)산업에 대한 투자의견을 밝혔다. 당시 IMF 관리체제에 있던 우리나라는 외자 유치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런 상황 때문이었을까. 당시 정보통신부를 이끈 배순훈 장관은 기업활동에 정부가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뚜렷이 했다.
한컴사태 1주일 후인 6월 22일. 아래아한글을 MS에 내줄 수 없다는 여론을 등에 업은 이민화 회장은 한글학회를 비롯해 15개 사회 단체와 함께 ‘한글지키기국민운동본부’를 설립,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본부는 10억원을 투입해 기획업무를 맡긴 대홍기획과 함께 1만원 국민주 운동, 100만 회원모집 운동 등을 펼쳐 나간다.
보름 정도가 지났을까, 한컴사태는 소강 상태에 들어선다. 한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아래아 한글의 프로그램 소스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아래아한글을 대체할 토종 워드프로세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까지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분명한 것은 아래아 한글을 MS에 넘겨서는 안된다는 국민 여론이 비등했다는 사실이다.
한글지키기운동본부의 활동은 물밑에서부터 시작됐다. 7월 중순 이 회장은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인 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과 함께 김재민 MS코리아 사장을 르네상스호텔에서 만난다. 김 사장의 회고. “이 회장이 저에게 아래아 한글 인수를 포기하라고 하더군요. 계약 당사자도 아닌 사람이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해 무척이나 기분이 상하더군요. 그리고는 대뜸 벤처기업협회 강연도 해달라는 말을 했는데 도통 앞뒤가 안맞는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또 만난다. “이 회장과 김 사장, 저는 아래아 한글이 MS로 넘어가든, 한글지키기운동본부와 함께 독자 노선을 걷든 법적인 부분을 문제 삼지 않기로 했습니다.” 조현정 사장의 회고다. 이에 대해 김재민 사장은 조 사장의 말에 대해 “당시 어떤 합의도 없었다”며 내용 자체를 부인했다.
MS의 투자금을 받겠다는 이찬진 사장의 결심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MS에 아래아 한글을 넘기면 한컴의 경영권이 보장되는 데다 임직원들의 재산도 보호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컴 경영진은 자신들의 집까지 담보로 잡힌 상태였다.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지속된 MS와 한컴의 협상은 7월 16일 새벽 모든 부분의 조율을 마치고 20일 최종 투자안에 양측 대표가 서명하기로 약속하는 것까지 진행됐다. 다 된 밥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MS 측은제헌절인 17일부터 시작되는 연휴를 가벼운 마음으로 즐겼다.
그러나 불씨는 남아 있었다. 한컴 경영진의 입장은 완벽히 굳어진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MS에 아래아 한글을 넘기는 것에 반대한 박상현 사장은 정내권 이사를 설득해 경영진 안에서의 논의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는 또 이민화 회장과 함께 한컴 자금난 해결책을 제시하며 이찬진 사장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결국 7월 18일 이 사장은 아래아 한글을 살리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꾸게 된다. 이들은 즉시 MS 측에 이 사실을 알리고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MS와의 결별을 공식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운동본부는 200억원을 조성해 한컴 부채를 해결하기로 했다. 또 이 사장은 CEO자리에서 물러나 최고기술담당자(CTO)로 백의종군할 뜻을 밝힌다.
결국 아래아 한글을 MS로 넘기기 위한 이 사장과 김 사장의 한 달간의 밀월은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된다. 7월 27일 한글지키기운동본부는 2기 한컴 경영권을 전하진 사장에게 넘기고 10월 19일 해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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