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인생을 살다보면

nullzone 2008.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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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해서인지

출근길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였다.

 

모두들 묵묵히 무가지를 읽고 있거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거나

DMB 액정에 눈을 응시하거나

 

아니면 나처럼 주위의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관찰한다.

 

문득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분의 샴푸냄새가 졸리운 나를 깨운다.

슬쩍 곁눈질로 보니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손에는 영어책을 보고 있다.

 

토익이나 수험서가 아닌 영어로 되어 있는 소설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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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들면서 나에게 있어서 영어란 넘지 못할 금단의 벽인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가지고 다녔던 영어사전은 그야말로 걸레와 같았다.

그 시절 영어공부 시간만 따지고 보면 아마도 전교에서 손가락 안에 들것이라 확신한다.

 

그도록 열심히 공부했건만 영어시험 결과는 나에게 좌절과 쓰라린 패배만을 가져다 주었다.

연습장 한권을 영어단어로 2~3일 만에 도배하길 몇개월임에도 불구하고

시험시간에 내 앞에 주어진 영어시험지는 나의 머리를 백짓장처럼 하얗게 만들곤 했다.

 

무더웠던 고3 여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험성적으로 인해서 영어선생님의 성난목소리에 교실이 쥐죽은듯 하던 때

선생님은 나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리고는 넌 내가 싫은거냐? 아니면 영어가 싫은거냐? 도대체 뭐가 문제냐?

 

영어를 제외하고는 다른 과목에서는 남들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받던 나에게

이 질문은 내 마음 한 구석을 아프게 했다.

 

불같이 화가 나신 영어선생님이였지만...

걸레가 되어 버린 내 영어사전과 영어 참고서를 보시고는

정말로 이렇게 공부한거냐? 그런데 왜 이럴까?

영어시험을 보는 법을 모르는거 아니냐?

 

한달쯤 뒤에 결국 영어선생님도 나에게 더 이상 영어시험성적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셨다.

 

내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남들보다 몇배 영어공부만 하고서도 언제나 영어성적만큼은 하위권을 맴돌고 있으니...

답답한 심정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우스운 일은 영어과목에 비해서 타 과목은 노력한것 보다 월등히 좋은 성적을 계속 유지 했으니...

아직도 미스테리한 일이다.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치룬뒤...

집으로 걸려온 담임선생님의 전화...

다른건 물어보시지도 않는다...

영어성적은 어떠냐?

 

암담하다... 18점인데요...

거의 이건 사형수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이 처절한 내 대답이였다.

(60점 만점에 18점이라.. 크크~~~ 참고로 국어는 1개틀렸고... 수학은 3개 틀렸으니

고 당시 시험난이도로 봐서는 국어 수학은 거의 환상적인 점수였다는 기억이 후훗..)

 

아무튼...

이렇게 고생한 영어인데...(영어도 물건너와서 나란 놈에게 참 고생도 많았다)

대학교 졸업때 어찌해서 토익은 약 600점을 넘겼으니 당시를 보면 공대생이였던

나에게 토익 600점은 무난한 점수였던것 같다.

 

웃긴건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기면

영어에는 거의 바닥이였던 내가 외국사람들과 말이 통한다는 거다.

그렇다고 유창하게 대화를 하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라

손짓 몸짓을 하면서 문장이 아닌 오로지 단어만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거다.

단어라고 해봐야 중학교 수준의 유치찬란한 단어들로만 이루어진 대화인것이다.

 

 

괜히 아침부터 글을 쓰다보니 무진장 길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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